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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터키군’이 키운 6·25전쟁 고아 “이제 내가 도울 때” 1천만원 기부

작성자 : 아시아문화연구원 날짜 : 23/02/18 12:37 조회 : 99

‘터키군’이 키운 6·25전쟁 고아 “이제 내가 도울 때” 1천만원 기부

등록 :2023-02-09 15:46수정 :2023-02-10 10:29

고병찬 기자 사진

‘앙카라 학원’ 출신 오수업씨 1000만원 기부
6·25 당시 터키군이 전쟁고아 보호 위해 세워
“이제는 우리가 튀르키예 도와야 할 때”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이 한국에 세운 앙카라학교. 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이 한국에 세운 앙카라학교. 연합뉴스

 

“제가 터키(튀르키예) 군인들에게 받았던 것을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9일 오후 오수업(78·사업) 앙카라형제회 회장은 <한겨레>에 무덤덤한 말투로 튀르키예에 1000만원을 기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6·25 전쟁 당시 전쟁고아였던 오 회장은 이들 군인 덕분에 성인이 될 때까지 ‘앙카라 학원’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오 회장은 “군인들이 주말마다 우리에게 식량을 갖다 줬던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 지역에 발생한 강진으로 지금까지 1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면서 한국에서도 이들을 돕기 위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 오 회장처럼 6·25 전쟁 당시 튀르키예군의 도움을 받은 노인들도 “받은 것에 비해 적지만 보답하고 싶다”며 나서서 눈길을 끈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오 회장은 6살이던 1951년 튀르키예와 인연을 맺었다. 피란을 가다가 폭격으로 가족과 헤어지게 된 오 회장을 튀르키예군이 발견해 ‘앙카라 학원’에 보내면서다. 오 회장을 거둔 ‘앙카라 학원’은 한국으로 파병 온 튀르키예 군인들이 지난 1951년 6월 경기 수원에 세운 아동 청소년 보호·교육시설이다. 군인들이 전선에 남겨진 고아들을 하나둘씩 막사로 데려와 보호하던 규모가 커지면서 앙카라 학원이 됐다. 튀르키예는 전쟁 이후에도 앙카라 학원에 큰 규모의 시설과 부지를 지원하면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 2021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오수업(78) 회장(오른쪽)의 사무실에서 김구용국 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 원장(왼쪽)이 ‘앙카라 학원’ 관련 증언을 듣고 있다. 아시아문화연구원 제공

지난 2021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오수업(78) 회장(오른쪽)의 사무실에서 김구용국 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 원장(왼쪽)이 ‘앙카라 학원’ 관련 증언을 듣고 있다. 아시아문화연구원 제공

 

오 회장은 “‘1·4 후퇴’ 당시 기차를 타고 평택·오산 쪽으로 피란을 가다가 폭격을 맞아 수원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다”며 “당시 수원에 있던 터키 군부대로 옮겨진 뒤 앙카라 학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전부 받고 18살 때 취직까지 해 사회에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앙카라 학원에 대한 역사를 기록해온 김구용국 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 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시 튀르키예군은 전쟁고아뿐만 아니라 수원을 비롯한 인근의 빈민들과 부상자들을 지원하기도 했다”며 “여러 기록을 종합해보면, 앙카라 학원은 1979년 문을 닫을 때까지 400∼700명 정도의 아이들을 길러낸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하기로 결심한 오 회장은 그동안 튀르키예로부터 받은 도움에 비하면 적다고 했다. “대지진 소식을 듣고 이제는 우리가 터키를 도와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터키군 덕분에 지금까지 먹고살 수 있으니 진심을 담아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다른 앙카라 출신 원아들인 앙카라형제회 회원들도 다 똑같은 마음일 겁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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