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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학원 기억과 기록] 백발의 청춘들이 전했다… "우리는 용감했고 아이들을 사랑했소"

작성자 : 아시아문화연구원 날짜 : 23/02/18 12:27 조회 : 83

[앙카라 학원 기억과 기록] 백발의 청춘들이 전했다… "우리는 용감했고 아이들을 사랑했소"

 

<11> 연재를 마무리하며

1951년 튀르키예 군인들은 전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의 부모를 자처하며 ‘수원앙카라학원’을 세웠다. 한국전, 그 참혹했던 전쟁 속에도 튀르키예 군인들은 수원 앙카라 학원에서 이 땅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르쳤다. 70년이 지난 지금 점차 희미해지는 앙카라학원의 의의를 재조명하기 위해 중부일보는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튀르키예 이스탄불·앙카라 참전용사회,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기록보관소, 주 튀르키예 한국대사관, 적신월사(적십자) 등을 방문해 취재했다. 중부일보는 튀르키예 현재 취재를 비롯해 한국에서 이뤄진 모든 취재를 정리해 지난 9월 22일부터 ‘월드리포트 앙카라학원 기억과 기록’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첫 보도는 ‘아흔 넘은 튀르키예 전사들, 수원을 기억하다(1면, 10면)’와 ‘한국전 ‘일당백 튀르키예군’, 부모 잃은 아이들 부모 역할 자처(11면)’ 등 3면에 걸쳐 다뤄졌으며 이후 보도는 매주 목요일 16면을 통해 전면보도가 이뤄졌다. 연재는 이번 12월 15일자 보도를 끝으로 총 14회로 마무리한다. 당초 연재는 10회를 기획했으나 보다 풍부하고 상세한 전달을 위해 총 14회까지 연재를 연장했다. ‘월드리포트 앙카라 학원의 기억과 기록’ 연재는 한국전 참전용사, 튀르키예 유관기관 관계자, 한국과 튀르키예 연구자, 주 튀르키예 한국대사관 등을 통해 얻은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전달했으며 한국과 튀르키예 우호관계의 원천을 재확인했다. -편집자주

9월22일~12월15일 총 14회 매주 연재
앙카라학원 '학교' 역할·군인들 헌신 짚고
생존 용사 인터뷰·양국 교류 비전도 살펴

 

◇ 월드리포트 앙카라학원 기억과 기록을 되짚으며

중부일보는 9월 22일부터 12월 15일까지 매주 총 14회에 걸쳐 ‘월드리포트 앙카라학원 기억과 기록’을 연재했으며 연재에 앞서 영상 ‘수원 앙카라 학원의 기억과 기록 튀르키예 취재기’를 통해 튀르키예 취재에 대한 뒷이야기와 연재의 시작을 알렸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영면한 튀르키예 참전용사 묘소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영면한 튀르키예 참전용사 묘소

연재 첫날 보도된 1회 ‘아흔 넘은 튀르키예 전사들, 수원을 기억하다’와 같은 날 같이 보도된 2회 연재 ‘한국전 ‘일당백 튀르키예군’, 부모 잃은 아이들 부모 역할 자처’를 통해서는 용인 기념비 참배 소회와 더불어 향후 진행될 앙카라학원 연재의 방향을 설명했다.

이어진 연재에서는 고아원으로 알려진 앙카라 학원에 대해 학교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되짚고 앙카라학원의 역할과 튀르키예군의 헌신을 조명했다.

튀르키예군 전사자를 위해 세워진 비석. 튀르키예군 전사자를 위해 세워진 비석.

참전용사 메흐메트 아리프 보란(92), 이브라힘 귤렉(92), 참전용사 야샤르 예켄(94), 고(故)핫산 후세인 딘츠튀르크, 압둘카디르 타브샨 등 생존 참전용사와 작고한 참전용사의 후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기억 속의 남아있는 앙카라학원과 한국전 모습을 총 4개 면,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전달했다.

참전용사 야샤르 예켄(94)과 그의 젊은 날의 사진 사진=안형철기자 참전용사 야샤르 예켄(94)과 그의 젊은 날의 사진 사진=안형철기자

또 이스탄불 소재 튀르키예 군사박물관,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 튀르키예 적신월사(적십자사), 데미르바체 초등학교, 알리 데니즐리 교수 인터뷰 등 흩어져 있던 앙카라학원에 대한 기록과 기억을 모아 3편의 연재로 재구성했다.

주튀르키예한국대사관과 한국문화원을 통해서는 앙카라학원을 중심으로 형제의 나라에 대한 의미를 재확인하고 미래 양국 교류 비전도 엿볼 수 있었다.

베가스 고지를 사수하고 튀르키예 국기를 올린 한국전 당시 야샤르 예켄 베가스 고지를 사수하고 튀르키예 국기를 올린 한국전 당시 야샤르 예켄

14회에 걸친 연재를 위해 취재진은 8월 13일 튀르키예로 출국해 같은 달 21일 귀국할 때까지 ▶이스탄불 소재 튀르키예 군사박물관 ▶참전용사 핫산 후세인 딘츠튀르크의 후손 인터뷰 ▶이스탄불 참전용사회 인터뷰-한국전 참전 용사 메흐메트 아리프 보란(92), 이브라힘 귤렉(92), 참전용사회 회장 메흐메트 칸디걀(70) ▶알리 데니즐리 교수 인터뷰 ▶주튀르키예 한국대사관 방문(이원익 대사, 박기홍 문화원장) ▶앙카라 참전용사회 인터뷰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 ▶참전용사 야샤르 예켄(94) 인터뷰 ▶튀르키예 적신월사(적십자사) ▶데미르바체 초등학교 방문 ▶한국공원 참배 ▶참전용사 압둘카디르 타브샨 후손 인터뷰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 연구자들과 인터뷰 중인 취재진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 연구자들과 인터뷰 중인 취재진

또 튀르키예 현지 취재에 앞서 7월 20일에는 용인 튀르키예 참전기념비를 참배하고 귀국 후에는 9월 16일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참배하는 것으로 취재를 마무리했다.

앙카라학원이 있던 수원의 초등학교와 교류를 제안한 외메르 비르센 데미르바체초등학교 교장 앙카라학원이 있던 수원의 초등학교와 교류를 제안한 외메르 비르센 데미르바체초등학교 교장

부산 재한유엔기념궁원 참배로 취재 종료
안장자 2천314명 중 튀르키예인 462명 
대부분 20대 초반…생존전우는 백발 성성
청춘 바치고 잠든 이 땅에 무심한 바람만

◇462명의 튀르키예 영령 부산에 잠들다.

취재진은 지난 7월 20일 용인 튀르키예군 참전기념비 참배로 취재일정을 시작했으며 튀르키예 현지에서는 8월 17일 앙카라 소재 한국공원을 찾아 한국전에서 산화한 튀르키예 영령과 그들의 공적을 기렸다.

튀르키예에서 귀국한 취재진은 9월 16일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 참배로 이번 취재를 마무리 했다.

압둘카디르 타브샨은 소위로 임관한 뒤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는 기관총 부대에 배속됐으며 정찰 중에 지뢰에 의해 한쪽 다리를 잃었다. 압둘카디르 타브샨은 소위로 임관한 뒤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는 기관총 부대에 배속됐으며 정찰 중에 지뢰에 의해 한쪽 다리를 잃었다.

이곳에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튀르키예 영령이 영면해있다. 국내에서는 용인 튀르키예군 참전기념비와 더불어 튀르키예 영령을 기릴 수 있는 유이한 장소이다.

취재진은 전선에는 치열하게 싸우고 후방에서는 앙카라학원을 통해 아이들을 길러낸 그들의 사랑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기물리적으로 가능한 곳이라면 시간을 내어 방문해 참배했다.

하산 후세인 딘츠튀르크 상사의 아들 알칸 베크만씨가 아버지의 사진에 대해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하산 후세인 딘츠튀르크 상사의 아들 알칸 베크만씨가 아버지의 사진에 대해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재한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 참전 튀르키예 전사자 462명이 안장돼 있어 모든 취재일정을 마치고 이곳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튀르키예뿐 아니라 대한민국(37명), 영국(889명), 캐나다(281명), 호주(380명), 네덜란드(120명) 등 총 2천314명의 영령이 쉬고 있다.

하산 후세인 딘츠튀르크 상사가 앙카라학원 아이들(추정)과 함께 찍은 사진 하산 후세인 딘츠튀르크 상사가 앙카라학원 아이들(추정)과 함께 찍은 사진

튀르키예 영령은 주묘역에 대부분 안장돼 있다. 안장자 전원을 둘러보지 못했지만 위패에 새겨진 대부분의 전사 당시 나이는 20대 초반.


젊다고 하기에도 너무 이른 나이다.

많은 나이라고 해봐야 25살, 이 역시도 지기에는 너무 푸른 나이.

이역만리 타국의 자유를 위해 생을 바친 젊은 넋들을 위해 무엇을 한다해도 그들의 생과 젊음을 갈음할 수는 없을 터.

이스탄불 소재 군사박물관의 한국전 섹션. 이날 취재진은 태극기 완장이 거꾸로 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박물관 측에 알렸다. 박물관측은 곧 제대로 전시하겠다고 답했다. 이스탄불 소재 군사박물관의 한국전 섹션. 이날 취재진은 태극기 완장이 거꾸로 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박물관 측에 알렸다. 박물관측은 곧 제대로 전시하겠다고 답했다.

무심한 세월에 위패는 녹슬어 청록빛을 발하고 있다.

고국으로 돌아간 전우들은 어느새 백발 성성한 아흔 노인이 됐다. 늘어난 빈자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그들이 앙카라학원에서 기른 아이들도 어느덧 칠순을 넘어섰다.

70년 세월 따라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도 백발의 전우들은 확실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참전용사 이브라힘 귤렉, 이스탄불 참전용사회 회장 아흐메트 칸디걀, 참전용사 메흐메트 아리프 보란. 왼쪽부터 참전용사 이브라힘 귤렉, 이스탄불 참전용사회 회장 아흐메트 칸디걀, 참전용사 메흐메트 아리프 보란.

그들은 "우리는 용감히 싸웠고, 그 아이들을 우리의 아이로 여겨 사랑했노라"고 외쳤다.

멀리 고국에서 전우들의 외침을 들었을까? 젊은 얼굴로 잠든 이들은 대답이 없다. 이곳 부산에는 푸른 잔디, 검은 비석, 나부끼는 깃발만이 조용하다.

안형철기자

중부일보 취재팀=강경묵 문화부장·김용국 박사·용인외국인지원센터장·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장·안형철 문화부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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