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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학원 기억과 기록] "부상 군인에 사과 건넨 한국 소녀"…참화 속에 핀 따뜻함 기억하다

작성자 : 아시아문화연구원 날짜 : 23/02/18 12:21 조회 : 84

[앙카라학원 기억과 기록] "부상 군인에 사과 건넨 한국 소녀"…참화 속에 핀 따뜻함 기억하다

 

1951년 튀르키예 군인들은 전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의 부모를 자처하며 ‘수원앙카라학원’을 세웠다. 한국전, 그 참혹했던 전쟁 속에도 튀르키예 군인들은 수원 앙카라 학원에서 이 땅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르쳤다.

 70년이 지난 지금 점차 희미해지는 앙카라학원의 의의를 재조명하기 위해 중부일보는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튀르키예 이스탄불·앙카라 참전용사회,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기록보관소, 주 튀르키예 한국대사관, 적신월사(적십자) 등을 방문해 취재했다. 

중부일보는 총 10회에 걸쳐 ‘월드리포트 앙카라 학원의 기억과 기록’을 연재하며 참전 용사들의 생생한 증언과 현지 기록을 통해 한국과 튀르키예 우호관계의 원천을 재확인한다.  

 


왼쪽부터 참전용사 이브라힘 귤렉, 이스탄불 참전용사회 회장 아흐메트 칸디걀, 참전용사 메흐메트 아리프 보란. 사진=중부일보 취재팀
 

<4> 한국전 참전용사를 만나다-메흐메트 아리프 보란·이브라힘 귤렉

본보 취재진, 이스탄불 및 앙카라 참전용사회 방문

현재 600~700명 생존…72명 거동 가능

멀리서 온 취재진 환대해준 참전용사들

전쟁 막바지 고지전까지 경험한 베테랑

노쇠한 노인 예상과 달리 첫 인상은 강렬

지난 8월 15일 이스탄불,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한국과는 달리 이즈음 이스탄불에서는 비가 오는 것은 손에 꼽는다고 한다.

때 아닌 폭우로 발이 묶여 취재진은 난감했지만 이날 일정이 한국전 참전용사와의 인터뷰였던 점을 뒤늦게 돌이킨다면 어쩌면 한국전에서 산화한 튀르키예 용사들의 반가움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폭우 때문에 취재진은 약속시간보다 다소 늦게 도착했지만 참전용사들은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집에 직접 만들어온 튀르키예 명절음식 아슈레를 내놨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참전 용사 메흐메트 아리프 보란(92), 이브라힘 귤렉(92) 두 사람은 21살 나이에 일반병사로 참전해 한국에서 23세까지 복무했다.


앙카라참전용사회에서 소장중인 한국전 사진
그들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노쇠하고 힘 없는 노인을 예상했던 취재진의 예측 맞지 않았다. 눈에는 생기가 가득하고 악수하는 손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현재의 나이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활기를 띄고 있었다.

때로는 소년과 같이 천진한 표정으로 취재진에게도 장난을 치는 등 한국전에 참전했던 젊은 군인은 여전히 늙지 않았다.

때로는 소년처럼 천진하고, 또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의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한국전 막바지에 벌어졌던 처절한 고지전까지 경험한 베테랑들이다.

이들이 기억하는 가장 큰 전투는 1953년 5월 28일~29일 파주 일원에서 발생한 네바다 전투(튀르키예에서는 베가스전투라 불린다)

네바다 전투는 동·서베를린, 엘코, 카슨, 대·소베가스 등으로 명명된 서부전선 일대의 고지에 벌어진 전투로, 튀르키예 여단이 가장 마지막으로 치른 전투이자 가장 큰 희생이 발생한 전투다.

터키여단 약 5천 명이 지키고 있는 이 일대를 중공군은 1개사단 1만5천 명으로 공격했다.

이날 만난 두 명의 참전 용사 역시 베가스, 베를린 고지 등에서 전투에 참가했다.

이 가운데 베가스 고지는 16시간 동안 9번 주인이 바뀔 정도로 전투내내 접전이 지속됐지만 튀르키예군은 끝내 고지를 사수했다.

처절한 전투 끝에 튀르키예군은 151명이 전사하고 450명이 부상을 당했다. 중공군은 약 3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격으로 친구 잃어…한국에 무덤 있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아이들 보고 마음 아팠다"

많은 군인들이 아이들 데려오려고 노력


이브라힘 귤렉. 사진=중부일보 취재팀
이브라힘 귤렉씨는 당시 전투에서 친구를 잃은 아픈 기억이 있다.

그는 "친구(사바 핫딘 챠우스)와 같은 막사 안에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폭격이 쏟아졌고 폭탄 파편이 친구의 머리로 날아와 목숨을 잃었다"며 "한국에 친구의 무덤도 있고, 무덤 자리도 알고 있다"며 여전히 친구를 그리워했다.

이어 "당시에 다소 나이가 있었던 장교들은 모두 돌아가셨다"며 "참전 할 때는 우리나라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한국인들에게 우리가 신이 보낸 준 선물처럼 여겨지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했다"며 당시의 결기를 전했다.


마흐메트 아리프 보란
참전용사 아리프 보란씨는 당시 한국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그는 "한국에서 전선으로 배치되기 위해 기차로 이동 했을 당시 군인들이 음식을 먹고 있으면 한국의 아이들이 모두 그 모습을 쳐다봤다"며 "그 때 나는 금식 중이어서 내가 가진 모든 빵과 음식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고 말했다.

이어 "나눠준 빵을 잡으려고 아이들이 싸웠고 그 가운데 일부는 옷을 입지 않았고 심지어 속옷도 없는 아이들이 있어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이날 인터뷰에는 아흐메트 칸디걀(70 키프로스 전쟁 참전) 이스탄불 참전용사회 회장도 동석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한국전에 운전병으로 참전했으며 아버지의 기억하는 따듯한 일화를 들려줬다.

칸디걀 회장의 아버지가 다리 부상으로 앰뷸런스로 후송 중이었을 때 도로 사정으로 잠시 앰뷸런스가 멈췄다.


앙카라참전용사회에서 소장 중인 한국전 사진, 튀르키예 병사들이 주민들에게 전투식량을 나눠주는 모습
그는 흰 원피스를 입고 길에 서있는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소녀는 그에게 조금씩 다가왔고,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전해줬다.

칸디걀 회장은 "당시는 겨울이었고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소녀가 건네준 사과를 아버지는 평생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칸디걀 회장은 "한국전 파병그룹은 21진까지이며 1~4진이 가장 많은 전투를 경험하신 분들이고 오늘 인터뷰한 두 분 역시 마찬가지"라며 "현재 튀르키예에는 600~700명의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으며 72명이 거동이 가능하다"며 현재 참전용사들의 근황을 전했다.

다음날인 16일 앙카라로 이동한 취재진은 이곳에서도 (앙카라)참전용사회를 방문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앙카라에 거주하는 참전용사들 가운데 거동이 가능한 참전용사는 없어 앙카라참전용사회 세히틴 야란 회장과 이스마일 구클루 부회장이 대신 인터뷰에 응했다.

세히틴 회장은 "한국전 참전용사 참전용사 별로 남아있지 않고 매일 매일 돌아가시고 있다. 앙카라에 살고있는 참전용사들은 현재 거동이 모두 불편하다"고 전했다.

취재진이 원한다면 각 참전용사를 소개해줄 수 있지만 인터뷰는 힘들 것이라 전해 직접방문은 단념했다.


취재진에게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소개하는 이브라힘 귤렉과 아리프 보란 참전용사
세히틴 회장은 "협회는 참전용사 지원하고 터키를 사랑하는 시민들에게도 이 전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고 알린다. 또 우리는 같은 전쟁을 겪고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며 "취재진을 환영한다. 한국은 형제의 나라다. 한국은 우리와 같다"고 형제애를 강조했다.

이들은 전우들의 기억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스마일 부회장는 "전해 듣기로는 아이들에게 옷이나 음식을 챙겨주고 고아와 아이들이나 하나둘 모아 교육을 시켰다고 들었다. 또 앙카라학원의 문구재료를 지원했던 데미르바체 초등학교가 앙카라 참전군인회 인근에 있다"고 알렸다.

또 "계급에 상관 없이 모든 군인들이 각자 아이를 챙겨서 그 깊은 마음이 있다"며 "이 때문에 튀르키예에 돌아올 때 많은 군인들이 아이들을 데려오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중부일보 취재팀=강경묵 문화부장·김용국 박사·용인외국인지원센터장·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장·안형철 문화부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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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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