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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월요논단] 민선 8기, 견제와 균형으로

작성자 : 아시아문화연구원 날짜 : 23/03/15 13:47 조회 : 80

[월요논단] 민선 8기, 견제와 균형으로

 

발행일 2022-06-27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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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한국 정치의 성장통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선거를 보면 누군가는 너무도 쉽게 당선되었고 누군가는 안타깝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흔히 "정치는 해야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 한마디로 한국 정치의 현주소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지방자치제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근거의 하나로 '지역이 사분오열된다'는 점이다. 저마다 지역을 위한다고 출사표를 던지지만 선거과정에서 빚어진 상호비방으로 인해 지역의 분열은 심화되고 지지자 간에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것이 일정 부분 사실이라고도 판단한다.

그런데도 민선 8기는 곧 돛을 달고 닻을 올리게 되었다. 우순풍조(雨順風調)의 환경이 조성된다고 하더라도 목적지까지 아무 탈 없이 순항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암초와 같이 보이지 않는 위험도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방자치단체의 항해는 승선한 모두의 몫이지 선장만의 책임도 조타수만의 책임도 아니다. 출마의 변과 같이 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면 사사건건 갑론을박할 것이 아니다. 지혜와 경륜을 함께 나누고 보태면서 오직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협력해야 한다. 

 

 

행정의 수장과 지방의회의 다수당이 여와 야로 나뉜 지방자치단체가 다수인 것으로 확인된다. 견제를 위한 기본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견제는 조화로움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몽니를 부리고 뗑깡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편향되고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견제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제 나머지는 배려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충분조건을 채우는 일이다. 배려가 없다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정치는 '할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
지자체 항해는 선장만의 책임 아냐
행정 수장과 의회 여야 나뉜곳 다수


이러한 교훈을 우화(寓話)에서 만난다. '어느 날 두루미가 여우를 집으로 초대하였다. 식사를 대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평소에 여우의 행동이 마땅찮았던 두루미는 호리병에 음식을 내놓았다. 초청을 받았던 여우는 단박에 빈정 상했다'. 식사 자리의 결과는 어떠했겠는가. 익히 알고 있고, 익히 짐작하는 바와 같다. 여우는 이제 두루미를 두루미라 부르지 않았다. "이런 개××" 평소 여우보다는 두루미를 좋아했던 사람들도 여우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법한 장면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두루미 편에 서는 사람들은 두루미의 잘잘못과 관계없이 두루미를 두둔한다. 여우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며 두루미족을 타매하고 거세게 공격할 것이다. 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이렇다고 생각한다. 브레이크는 작동되지 않고 관성의 법칙만 존재한다. 성찰은 없고 비판만 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거짓을 진실로 호도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렇게는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어느 편에 섰든지 간에 겉으로는 상대를 공격하더라도 집안으로 돌아오면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시시(是是)하고 비비(非非)하여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지역을 위하고 국가를 위한다는 것이 정녕 진정이었다면 닻을 올리게 하라. 그리고 항해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돛의 방향을 감시하고 충언하라. 상대편만의 잘못이 아니다. 내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을 수 있고 그런 순간이 도래할 수 있음을 생각하라.


편향되지않고 배려하는 공동체 돼야
"상대편 불행, 나의 행복삼지 말라"


버트런드 러셀은 "지금 다른 사람의 불행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바라는 사람이 많다면, 몇 년 후에 이 세상은 낙원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 더 행복한 세상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나 생각한다. 올봄 화단에 족두리 꽃 씨앗을 뿌려두었다. 거리를 두지 않고 함께 자라게 하였더니 키는 자그마한데 벌써 꽃대가 올라왔다. 함께 한다는 것이 한편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견제하고 경쟁하는 것도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편도 잘하기를 바라고 나는 더욱 잘하기를 바라는 것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상대편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으려 말라. 양보는 닻이고 견제는 돛이다. 닻도 돛도 함께 올리고 펼치는 공동체의 항해를 지켜보고 싶다.

/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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