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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월요논단] '호박씨 깐다'의 의미

작성자 : 아시아문화연구원 날짜 : 23/03/15 13:47 조회 : 85

[월요논단] '호박씨 깐다'의 의미

 

발행일 2022-05-09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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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원(願) 없이 호박씨를 깠다. 혼자서는 버거워서 동료들과 함께하였다. 단순한 일이지만 함께한다는 즐거움이 컸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아파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 덕에 왼손으로도 호박씨를 까게 될 정도의 기술도 익혔다. 자타공히 호박씨 까기의 달인이 된 듯싶다.

'호박씨'의 사회적 문법의 의미는 '뒷이야기'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오랜 관습적 상징이었고 그 의미는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호박씨 깐다'라는 것은 세상살이가 힘겨운 이들의 자기 위안 있었고 탈출구였다는 의미도 간과할 수 없을 듯하다.

이 일을 계기로 생각한 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문법은 매우 단순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큰 흐름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고, 복잡하다는 것은 정치인을 비롯하여 각자의 성향 등에 따라 문법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다양한 문법을 익히는 것은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이참에 사회적 문법의 복잡함에 더하여 새로운 문법을 제안한다.  

 

 

'출신·종교·문화 상관없이 함께 사는
사람들 사회위해 힘 합친다' 뜻 제안


제안의 배경은 이렇다. 나의 일터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재한외국인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돕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급식 봉사를 하는 '영보의 집' 수녀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우리 기관은 재한외국인 가운데 어려운 가정을 추천하여 가족들의 식사를 제공받도록 연계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수녀님과 종종 연락하며 고마움과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오늘, '영보의 집'에 들르니 호박씨가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먼저 반가운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와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앉아 호박씨를 까던 그 정겨운 모습도 떠올랐다. "수녀님, 이거 까야 하는 거죠? 어디에 쓰시려고요?" 그랬더니, "이거로 반찬을 만들려고요. 천천히 하려고 해요" 그러시는 것이다. "그럼 이거 제가 가지고 가서 까 올게요. 이것이라도 도와드려야죠" 그러니 "힘들 텐데 괜찮겠냐?" 그러신다. "암요, 저 호박씨 잘 까요. 제가 까올게요" 그러고는 호박씨를 잔뜩 가지고 왔다.

그렇게 혼자서 호박씨를 까기 시작하였는데 좀체 줄지가 않는다. 그래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이걸 어떻게 할까?"하였더니, "저희도 같이할게요"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호기심도 있었고 다소간의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필리핀, 네팔, 베트남, 태국 출신의 이주민들이 함께 근무하였는데 "식사를 제공받는 사람들 가운데는 필리핀, 네팔, 베트남 출신도 있어요. 우리도 뭐라도 도와드릴게요"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짬을 내서 열심히 호박씨를 깠다.

순간 일반적인 문법과 다르다는 여의도 문법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한국사회가 여의도 정치의 문법을 모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미 정치의 문법으로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오랜 습속으로 관습적 상징으로 자리했던 '호박씨 깐다'의 의미도 이제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출신, 종교, 문화와 관계없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를 위하여 힘을 합친다'라는 의미로 '호박씨 깐다'는 의미를 제안한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러하다. 오랜 습속을 반드시 계승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의도 문법' 스스로 더 냉정하고
혹독한 어법·행동할 수있게 변화돼
매화 지조·절개처럼 정치인 자리잡길


이렇듯이 여의도의 문법이 변화되었으면 한다. 여의도의 문법은 스스로에게 더욱 냉정하고 혹독한 어법과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화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날이 오고 있는지, 그런 날이 진정 올 것인지 이는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함께 응원해주시고 실천해 주신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매화는 어느결에 피어나 이제는 지었겠지만 '혹독한 추위에서 향을 팔지 않는 매화의 지조와 절개'가 '정치인'의 문법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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