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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일보] [문화와 삶] 가을에도 추(鰍)하다

작성자 : 아시아문화연구원 날짜 : 23/03/15 13:38 조회 : 85

[문화와 삶] 가을에도 추(鰍)하다

 

  •  입력 2020.11.19 19:33
 

코로나와 함께 가을을 맞이하였다. 어언 1년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사회적 거리를 두다 보니,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다소의 불편함 속에서도 ‘함께 공동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공동체 의식은 오히려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나와 가족에 대한 배려’라는 사실도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의식에도 변화가 일어났고 어느덧 세월은 흘러 가을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자연의 변화에서 맞이하는 계절과 마음으로 느끼는 계절에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우리가 기다리던 가을은 단단함이 아니었다. 넉넉하기를 바라고 풍요롭기를 바랐다. 그런 까닭인가 보다. 춘래불사춘이라 하더니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다. 우리가 바라던 그 가을이 아닌듯하다.

깊어가는 가을날 만해의 시가 유독 생각이 났다. "산 집의 일 없는 사람 가을꽃을 어여삐 여겨/ 지는 햇빛 받으려고 울타리를 잘랐더니/ 서풍이 넘어와서 꽃가지를 꺾더라" 만해 한용운의 시 「추화(秋花)」의 전문이다.

이 시를 읊조리노라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움을 알게 된다. 이 시는 무척이나 꽃을 사랑하는 이들이라야 공감도가 크리라 생각한다. 하필 가을의 해는 일찍 저무니 더 많은 햇빛을 받으라고 울타리를 잘랐다고 한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가을바람은 한껏 낮아진 울타리를 넘어 꽃가지를 꺾었다. 요는 과유불급이다. 울타리를 자른 것은 사족(蛇足)인 것이다.

가을은 모름지기 사람이 그리운 계절이다. 옛 시인 묵객들의 시에는 이렇듯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있다. 가을비 내리는 깊은 밤,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최치원은 사무치게 가족이 그리웠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하였다.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세상에 나를 알이 적구나. 깊은 밤 창밖엔 비가 내리는데 등불 앞의 마음은 만리를 달리네" 추야우중(秋夜雨中)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의 외로움을 노래한 시이다.

부안의 절창 이매창의 시조에도 가을날 느끼는 그리움이 여전하고 절절하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 하였다. 꽃 피는 시절 이별한 이가 깊어가는 가을날, 시인에게는 꽃보다 애틋한 그리움인 것이다.

그런데 올가을에는 유독 그립지 않은 이가 있다. 그의 말들은 이치를 어긋나고 상대를 무시하고 겁박한다. 지렁이에 다리를 그려놓고 뱀이라 우긴다. 도마뱀은 본래 다리가 없었다고도 한다. "대화가 이렇게 경박할 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되니 참으로 민망하기만 하다. 갖은 억지를 부리며 질문엔 답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꼴이 얄밉고 화가 난다. 요놈의 미꾸라지가 자기를 세상의 제일로 알고 분탕질을 하는 꼴을 보자니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 그런 탓일까? 마음은 헛헛하기만 하다.

코로나와 함께 온 올해의 가을은 그러하기에 풍성함은커녕 사람으로 인해 씁쓸하고 쓸쓸한 가을이 되었다. 이렇듯 올해의 가을걷이는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였다. 한겨울을 지낼 일이 막막하다. 그러니 깊어가는 가을, 추어탕 한 그릇 팔팔 끓여 허전한 속을 달래두어야겠다.

김구용국 문학박사·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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