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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일보] [문화와 삶] 탓하지 마라, 서로 격려해야 할 때

작성자 : 아시아문화연구원 날짜 : 23/03/15 13:37 조회 : 68

[문화와 삶] 탓하지 마라, 서로 격려해야 할 때

 

  •  입력 2020.09.03 19:37
 

연일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이제 누구도 코로나 19의 감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제 나 하나만 예방수칙을 잘 지킨다고 하여 감염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생활 속 개인 방역의 수칙을 성실히 따르고 지키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이렇게 세상이 온통 어수선하고 뒤숭숭한데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는 논란과 정치권의 행태는 다수의 국민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 남 탓하지 말라, 그런다고 내 허물이 감추어지지 않는다. 서로 옳다 다투는 것을 보면 옳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서로 탓하는 것만 들으면 너나없이 허물투성이 거짓투성이다.

게다가 내가 속한? 혹은 속하고 싶은 편의 의견은 모두가 옳고 상대는 무조건 그르다. 사실 판단은 없고 가치판단만 있다. 객관적이어야 하는 판단도 주관적이다. 있는 사실을 따져 물어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사실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라 한다.

안타깝지만 작금의 현실을 보면 세상이 말하는 정의란 이런 것 같다.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거나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집단끼리 옳다고 생각하는 것." 아무래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정의’란 그런 것만 같다.

타산지석? 없다. 반면 거울도 없다. 성찰도 없다. 꼭, 투전판만 같다. 이게 무슨 정치이고 시대정신이란 말인가? "남 탓 하지 말자."

오늘 출근길에 든 생각이다. 참고로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일요일이다. 나도 숙기가 없어 버스를 탈 때 고개를 약간 숙이고 목례(目禮) 정도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런데 어느 젊은이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잘 왔습니다. 수고하세요."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뒷문으로 내리면서 버스기사에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였으니 얼마나 힘차게 인사를 했겠는가? 운전석에 가까이 앉아있던 내가 오히려 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향한 정감이 높아졌다.

하여 이렇게 제안하고 싶어졌다. 이 어려운 시기 "서로 격려합시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이렇게 따뜻한 격려의 말로 우리가 진정한 이웃이고 자랑스런 대한국민임을 확인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와 내 가족, 내 편만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하여 위생을 더욱 철저히 한다면 아마 코로나도 "어이쿠, 대한국민 정말로 대단하구나!" 기겁하고 물러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꼭 탓을 해야겠다면 ‘내 탓’만 하였으면 좋겠다. ‘남 탓’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상대의 입장에 서보면 이해 못 할 일이 없다. 이해하게 되면 측은해져서 이쁜 구석도 보인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 버스에서 만났던 젊은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러고 나니 잘 출근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태워다 준 기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08시 04분경 중앙지구대 앞까지 안전하게 태워다 주신 기사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왔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 우리의 희망이 사라지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면서 슬기롭게 잘 극복해낸 대한국민으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만 하다. "탓하지 마라, 서로 격려해야 할 때."
 

김구용국 문학박사,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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